영화를 즐기기 혹은 영화를 소비하기 :: 2007/07/25 19:47

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만, 영화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였습니다. 하지만, 제가 영화를 "감상"하는 단계로 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때부터라고 생각합니다.

그 때를 생각해 보면 집에서 허구헌날, 시간만 나면 이미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했었으니까요. 지금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공중파를 녹화한 "스타워즈 1편" - 지금으론 에피소드 4 - 을 대략 100번 넘게 봤었고, 이걸 제외하더라도 친구한테 복사해온 애니메이션중에 '초시공요새 마크로스' "Five Star Stories'같은 건 적어도 2-30번은 봤었습니다.. 뭐, 나중에는 대사를 다 외울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요.

그 때는 단순히 재미있으니 보고 또 본다라는 이유에서 한 행동이지만 이렇게 한번 보고 두번 보고 보고 또 보니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우러나오는 '맛'(?)이 다르더라는 것을 무의식 중에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.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많이 볼 수록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고, 느낄 수 없었던 것을 더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.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영화를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. 즉, 어떻게 해야 영화를  좀 더 재밌게 볼 수 있을지 말입니다. 그러기 위해선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느껴야 되고, 그러려면 어떻게 영화를 봐야 되고, 또한 보고 나서 뭘 생각해봐야 되는지. 그리고 어떤 영화가 보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지 같은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요..

오늘 "초속 5cm"를 다시 보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온몸이 전율하는 쾌감을 느꼈습니다. 정말로 오랜만이었습니다. 게다가 처음 '초속 5cm'를 볼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거든요.그러면서 갑자기 최근의 제 자신에 대해서 살펴보게 되더군요. 요새 내 자신이 영화를 "즐기지" 못하고 단순히 "소비"하고만 있지는 않은 가 하고요.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느끼지 못하고, 즐기지 못하고, 단순히 "난 이 작품을 봤다!"라고 하는 훈장을 받고 싶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훈장을 치장하기 위해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.

그러면서 제가 쓴 글을 다시금 되새겨 봤습니다. 평소에도 약간은 느꼈던 것입니다만, 제가 봐도 알맹이가 없더군요. 이 작품을 보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게 되었는지가 글 안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. 즉, 영화를 즐기지를 못하고 있더군요.. 단순히 한편의 영화를 소비할 뿐...

왜 이렇게 되었는 지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. 요새 보는 영화들이 한쪽으로 편향된 감도 있고, 즐기기에 그다지 적당하지 않은 영화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. 혹은 내 자신이 영화를 즐길 시간적 여유는 없으면서, 영화를 봐야 되는 의무감에 억지로 영화를 보고 있는 것 일 수도 있죠.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, 앞으로는 영화를 좀 즐기면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. 100편의 새로운 영화를 보는 것 보다 한 편의 훌륭한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이 더 쾌락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.

2007/07/25 19:47 2007/07/25 19:4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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